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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3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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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1년이 된 해이면서 주민자치를 시작한지 21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의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안성호 한국행정연구원장은 2021년 8월 26일 ‘한국의 읍·면·동 자치제 기본안 도출’을 위한 세종콘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은 시·읍·면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였고, 1952년부터 읍·면 자치제를 시행했으나 자치경험의 미숙과 중앙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표류하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는 풀뿌리 자치가 소멸되었고 기초자치단체인 군단위 자치는 광역지역으로 인해 주민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의 성공열쇠는 ‘주민자치’의 시각에서 ‘단체자치’의 측면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체자치에 비해 주민자치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지방자치가 주권재민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음을 상징한다. 언제부터 지방자치의 단위가 ‘시·읍·면’에서 ‘시·군·구’로 변경됐을까? 1988년 지방자치법부터다. 그 이전 1949년의 지방자치법 제2조에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시·읍·면’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지방자치법 제1조 목적규정에 변경이 생긴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주민자치의 역사, 의의와 한계

1949년 지방자치법 제1조에 '본 법은 지방의 행정을 국가의 감독하에 지방주민의 자치로 행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어, 주민자치를 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1988년 지방자치법의 제1조 목적조항이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그 조직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기본적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며,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바뀌었다.

 

1949년 법에 비해 1988년 법은 주민자치라는 목적 규정(제1조)이 빠지고,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발전이라고 하는 단체자치를 위한 목적으로 변경되었다. 즉, 주민자치의 목적을 보여주는 1949년 법 제1조와 제2조에 ‘시·읍·면’이 설정되어 있던 것이 1988년 법에서 ‘시·군·구의 단체자치’로 변경되었다. 이런 변경은 주민자치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시대착오적인 후퇴이다.

 

 

한국은 1949년 법에 따라 ‘읍·면·동장 직선제’가 시행된 바 있다. 지난 1955년 동장 선거, 1956년 읍면장 선거가 그것이다. 그리고 4·19 혁명 이후 민주화의 열망에 따라 탄생한 2공화국 헌법 제97조(1960년 6월 15일 헌법 개정 신설조항,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은 법률로써 정하되 적어도 시·읍·면의 장은 그 주민이 직접 이를 선거한다')에 근거하여 ‘읍·면·동장 직선제’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196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읍·면·동 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변경했다. 이처럼 현재까지 이어지는 읍·면·동장 임명제는 군사독재의 산물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49년 지방자치법 목적대로 주민자치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읍·면·동장 직선제를 부활해야 할 것이다.

 

현 주민자치 실태의 문제점

2020년 10월 9일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이 21대 첫 정기국회를 통과했다. 32년 만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단체자치가 한 단계 진전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주민자치 관점에서 볼 때, 권력기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주권재민’의 핵심 원리인 ‘주민자치회’ 설치 규정이 빠졌다는 점에서 큰 오점을 남겼다.

 

주민자치회 조항이 삭제된 것에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한국주민자치학회(회장 전상직) 등 주민들이 비판을 하자 정치권은 7건이나 되는 주민자치회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2건(김두관 안, 이명수 안)을 제외한 5건의 법안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른 ‘회원 규정’을 엄밀하게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주민자치회의 관제화와 관치화를 초래하는 문제점을 남겼다.

 

5건의 법안들은 문재인 정부가 범했던 주민자치회 시범조례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 법안들은 ‘지방분권법’을 계승하지 않고 모법에서 이탈한 행안부 표준조례안의 문제점을 방치하고 주민자치회 구성원을 ‘주민’ 대신 ‘위원’으로 대체해 주민참여를 배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했다.

 

주민자치회가 지역현장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결사의 자유’에 기초하는 자발적 결사체가 되기 위해서는 회원 규정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회원 규정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민주적 의사결정기구인 주민총회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책임성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읍·면·동 및 통·리·반 해당 구역에 사는 주민 모두가 진성회원으로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1인 1표에 따라 자유롭고 평등하게 민주적인 의사를 형성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성공조건이기 때문이다.

 

해외사례의 교훈

주민자치회의 성공은 지역주민의 대표성을 담보하는 주민총회에서 나온다. 주민총회는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주민들이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등 자치권을 확보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의결기관이다. 미국, 영국, 스위스 같이 전통적으로 주민자치에 기초한 연방정부가 발달한 국가는 주민자치의 성격이 강하고, 프랑스 같이 중앙권력이 강한 국가는 단체자치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의 타운미팅은 주민들이 주민총회에 참석해서 자유롭게 의사 표시를 하거나 지역의 대표자와 집행관을 뽑아 위임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하고 공무를 집행한다. 스위스는 게마인데총회처럼 주민이 주민투표를 통해 게마인데의 주요 사안(지방세의 징수세율, 예산, 주민발안 등)을 결정한다. 미국의 타운미팅과 스위스 게마인데는 주민들의 자발적 결사체인 주민총회를 통해 주요 공직자 선출(국민투표), 법안 및 청원(국민발안)을 결정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주권재민의 생명력과 삶의 역량이 생활터전인 마을주민총회라는 뿌리에서 자라나도록 추구하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표적 예는 미국 건국시기의 타운미팅과 타운자치정부이며, 세계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시정부이다.

 

미국 타운미팅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예는 인구 2만5000여 명의 뉴햄프셔주 런던데리(Lodonderry) 타운이다. 런던데리 타운미팅의 역사는 200년이 넘는다. 그 타운미팅은 1년에 한 번 매해 3월에 열리는 연례총회와 특별총회로 구분되는데 특별총회의 경우 타운 내 중요한 안건이 있을 시에만 소집된다.

 

주권재민의 원칙은 미국 건국기 타운미팅과 제퍼슨의 ‘기초공화국 모델 헌법안’에서 그 원형이 잘 드러나는 만큼, 여기에 주목하고 우리와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사례들은 억압적인 국가권력과 중앙집권적인 관료주의 정부형태를 능동적으로 분쇄하고 시민의 말과 행위가 자유롭게 표현되면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민자유의 공간’(pubilc realm)을 보여주었다.

 

제퍼슨은 카운티(county)를 수백 개의 구(wards)로 세분하여 분할하고 그 곳에 ‘소규모 기초공화국(elementary republic)’을 창설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런 창설이 공화주의 정부의 원리라고 보고, 이런 소규모 공화국은 대규모 공화국의 원동력으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제퍼슨의 이런 원칙들은 ‘보충성의 원리’와 ‘연방주의 원리’로 통한다. 그는 기초공화국이 창설될 때, 중앙정부의 관료주의 경향에 대한 개인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제퍼슨의 기초공화국 구상을 전국적으로 3500개의 읍·면·동 및 더 작은 통·리·반이 있는 한국 상황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전국의 통·리·반 동네와 읍·면·동 마을에 설립되는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인 주민총회와 기초공화국의 씨앗이 되도록 하여 그 생명력이 자라나게 한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중앙에 집중된 권력과 인력과 예산은 주민과 주민총회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읍면동장 직선제, 주민자치회장 및 주민자치위원 직선제, 통리반 주민자치회 설치 등을 우선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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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방자치 30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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