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끊기면 대학정책 중단…지자체에 예산 분산 필요"
[지방분권 주제별 전문가 좌담.4] 대학교육 자치를 위한 협력과 기능이양 방향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함께 부활한 지방자치가 올해로 30년을 맞으며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과 지역의 미래먹거리 확보를 위해 지방정부와 대학 간 연계 협력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대학지원은 지방정부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어 양 주체 간 연계협력이 어려운 상황이다. 영남일보는 창간 75주년 지방분권 좌담회 네번째 주제로 '대학교육 자치를 위한 협력 및 기능이양 방향'을 마련했다. 지난달 26일 영남일보 7층 회의실에서 하세헌 경북대 교수(대구시 지방분권협의회 위원장)가 좌장으로 곽지영 포스텍 교수(미래도시연구센터 부센터장), 최명숙 계명대 교수(교육혁신처장), 최철영 대구대 교수(포럼창조도시 대표)가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하세헌 좌장=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지방정부-대학-산업계가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상생발전하는 모델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곽지영 교수께 부탁드린다.
△곽지영 교수= "포스텍(포항공대) 출신으로 졸업 후 산업계에 몸담았다가 모교로 돌아와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 온 후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스마트 시티다. 유럽의 경우 여러 도시에서 그 지역에 있는 강한 대학이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도시의 혁신에 좋은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오늘 제가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지역은 영국 브리스틀이다. 브리스틀시는 2015년부터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2017년 영국 스마트시티 지수(UK Smart Cities Index 2017) 평가에서 런던과 맨체스터를 누르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어떤 요인으로 인한 것인지 궁금해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 브리스틀시에 직접 가서 살펴봤다. 제가 주목한 것은 오퍼레이션센터(City Operations Centre)·브리스틀 이즈 오픈(Bristol Is Open), 그리고 'The Bristol Approach to Citizen Sensing'이었다. 오퍼레이션센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브리스틀 오퍼레이션센터는 그 키워드가 감시·모니터링이 아닌 협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브리스틀 이즈 오픈은 놀랍게도 회사였다. 브리스틀시·브리스틀대학(University of Bristol)의 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회사로, 이 회사를 통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 주체(회사)가 있음으로 해서 시나 대학이 단독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The Bristol Approach to Citizen Sensing'는 도시의 문제를 주민참여를 통해 해결해 가는 핵심적인 공간이다. 주민들이 함께 문제를 매핑하고 우선 순위를 결정하며 센서 기술과 시민 생성 데이터를 사용하여 솔루션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주민 스스로 토론과 실험을 통해 사회적 이익을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스마트 시티나 대학과 지역이 협력하는 움직임 등이 있는지….
△곽지영 교수= "포스텍 미래도시연구센터가 있다. 취지가 시민들과 함께 대학연구 기능을 활용해 도시(포항시)와 협력을 하면서 이에 필요한 기업을 참여시키는 역할이다. 거대담론으로 접근하면 시민들이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곧장 시들해진다. 그래서 저희(포스텍)는 시작점을 캠퍼스로 잡았다. 리빙랩 캠퍼스로 만들자고 하고 제가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느 한 구성원도 무관심하지 않다."
△최철영 대구대 교수= "포항시뿐만 아니라 대구시도 대구창조도시포럼의 '대구 리빙랩(The Creative Daegu Living Lab, D-Lab)'이 '유럽 리빙랩 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s, ENoLL)'의 정식 멤버다. 아시아에서는 여섯 번째 도시로 가입했다. 다만 대구는 아직까지 대학과 시 등을 엮어 줄 수 있는 중심기관이 없는 아쉬움이 있다."
▶중앙정부의 대학정책과 지방정부의 재정지원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관련법 개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철영 교수의 의견을 부탁드린다.
△최철영 교수= "'대학과 지역의 협력과 상생'은 시급한 중대과제인데 대학교육에 관한 재정권은 중앙정부가 다 가지고 있고 대구시나 경북도 같은 광역지방자치단체에는 법적인 권한도 의무도 없다. 정작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방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서울 중심의 사고를 하는 중앙에서 교육부가 지방대학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이는 지방대학의 육성법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지방대학 죽이기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 중앙정부는 지방 중소도시·청년과 청소년·일자리 창출을 모두 아우르는 청년지역연계 플랫폼으로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지방대학육성법도 대학과 공기업 등에서 지역균형인재를 일부 우선 선발하는 데 초점이 있고, 국가 재정지원은 선언적 의미만 갖는다."
▶법적인 관점에 대해 보충 설명 부탁드린다.
△최철영 교수= "우리와 유사한 수도권 일극주의와 인구감소 및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경우 지역대학진흥법을 통해 단순한 지방대학정책이 아닌 지역정책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성과 자립성을 기초로 지역, 청년, 일자리를 모두 고려한 지방대학진흥책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철학과 정책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게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역 대학들이 위기를 겪고 있고 대학의 위기는 지역의 위기라는 공감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대학개혁을 위해 '대학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했는데, 지역 대학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떤 점이 우려스러운지 최명숙 교수께 설명 부탁드린다.
△최명숙 교수= "저는 논의를 좀 더 대학 내부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고자 한다. 최근 교육부에서 제시한 대학교육혁신방안의 핵심은 대학을 혁신의 주체로 하고 대학의 자율 혁신을 통한 미래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통합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수많은 새로운 사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대학으로서는 모든 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운영해야 하는 대학에서는 각 사업의 추진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대학의 미래지향적이고 통합적인 혁신 방안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가.
△최명숙 교수= "디테일하게 보면 정부가 과연 대학을 혁신의 주체로 보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대학들이 과연 중앙정부 눈치 보지 않고 특성화와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까는 좀 더 살펴봐야 된다. 지난 10년간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해 오면서 사업이 팽이돌리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인재양성은 기업의 물건생산과 다르다. 최소 사업기간은 5년은 돼야 한다. 대학 특성화가 아닌 대학 내 학생들의 특성화가 가능한 지원방안도 필요하다." <영남일보>
△최철영 교수= "조금 전 최명숙 교수가 팽이돌리기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들 프로젝트가 중앙정부의 시각에서 짜낸 정책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입맛에 맞춰 돌리다 보니까 지원이 끊어지면 쓰러진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지자체에 대학관련 예산을 주고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해 가도록 해야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이 가능하다. 휴스타(HuStar)사업은 대구경북혁신인재양성프로젝트로 대구경북이 처음 만든 모델이다. 기존 국비사업은 지자체 개입하지 않지만 휴스타는 대구시와 경북도 등 광역지자체와 대학과 기업을 묶어서 만든 인재육성모델이다. 국가도 못하는 것을 지역에서 해냈다."
▶논의의 결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대학재정도 중요하다. 대학자치와 대학자율 강화를 위한 재정적 독립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
△최철영 교수= "우리나라는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을 신입생충원율과 함께 평가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두고 있는데 정작 기업과 국가는 공짜로 대학에서 교육받은 인적자원을 쓰면서 대학에 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제 국가에서 '교육성과배당금제도'를 도입해서 각 대학이 배출한 취업자 수에 따라 대학에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취업했고, 취업해서 세금을 내고 있으니 그 세금수입을 국가가 독점할 게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배출 성과에 따라 각 대학에 일부를 돌려주는 게 옳은 일이다." <영남일보>